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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림 알아짐의 결혼식은 열사의 나라 전체가 시끄러울 정도로 성대하고 화려하게 진행되었다. ‘장차 아짐 가를 이끌 부부다, 남부럽지 않게 진행하는 게 마땅하지.’ 신랑의 아버지이자 현 아짐 가의 당주는 상견례 자리에서 했던 그 말을 재력으로 몸소 실천했고, 신부 측의 아버지도 그에 보답하듯 신랑과 신부에게 나라에서 제일가는 보석 장인이 만든 예물과 새 살림에 필요한 물건들을 잔뜩 준비해 주었다.

 

그야말로 모두가 동경할만한 성대한 혼례. 하지만 이 눈부신 예식에는 이런저런 놀라움 반응들이 뒤따랐었다.

 

‘신기하기도 하지, 그렇게 사이가 안 좋던 어르신들 끼리 사돈이 되다니.’ 아짐 가의 며느리가 되는 이의 집안을 잘 알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이 결혼에 대해 말할 때 마다 꼭 저 말을 덧붙이곤 했다.

 

소문의 며느리는 패럿베인 가의 장녀, 이사르 패럿베인. 본디는 소소하게 이 나라 저 나라를 오가며 방랑상인으로 살아가던 집안이었으나, 몇 십 년 전 시작한 무역업으로 갑자기 돈을 벌어들이고 정착한 장사꾼의 집안의 명석한 맏딸.

부호라고 할 만한 가문이 잔뜩 있는 열사의 나라 안에서 패럿베인 가는 그저 중산층에 가까운 소부(小富) 가문일지 몰라도, 그들은 아짐 가의 눈밖에 벗어난 이들과 상업거래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언제나 대부호인 아짐 가의 견제를 받아야 했었다.

 

‘분명 사이가 나쁜 줄 알았는데!’

 

하지만 메마른 땅에도 꽃은 피는 법인 걸까. 부모끼리, 가문끼리, 치열한 기싸움을 벌이는 와중에도 아짐 가의 장남인 카림과 패럿베인 가의 장녀인 이사르는 누구도 모르게 사랑을 싹틔우고, 약혼까지 하게 되었다. 물론 이 사실이 밝혀졌을 때는 양쪽 가문이 다 뒤집어 졌지만, 그 폭풍은 오래 가지 않았지. ‘어디 근본도 없는 가문의 딸을 아짐 가의 안주인으로 들인단 말이냐!’ 고 화를 내던 것도 잠시, 카림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패럿베인 가문이 자신들의 힘이 된다면 얻을 수 있는 이점을 떠올리곤 결국 카림의 요청을 허락해 주고 말았으니까 말이다.

그래. 말하자면 이것은 카림이 집안 어른들을 꾸준히 설득한 결과 얻어낸 결혼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몰래 사랑을 속삭인 상대를 제 아내로 맞이하기 위한, 힘들고도 무거운 싸움.

 

“이사르! 준비 다 되었어?”

 

오늘은 그 싸움의 종지부를 찍는 날이자, 새로운 삶의 시작이 될 날이다.

카림은 이른 아침부터 근사하게 혼례복으로 차려입은 후 부리나케 신부의 방으로 달려갔다.

어제는 들떠서 정말 한 숨도 자지 못했다. 언제나 본 얼굴이지만, 오늘은 더 아름다울 테지. 혼례복을 입은 이사르를 상상하며 행복해 진 그 는 당당하게 신부가 있을 방의 문을 열려 했지만, 그 순간, 익숙한 얼굴이 튀어나와 막아서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그대로 멈춰서고 말았다.

 

“도련님, 들어오면 안 되어요!”

 

카림을 막아선 것은 아짐 가에서 오래 일해 온 시종이었다. 이번 혼례식에서 신부의 들러리 ]]역할을 하게 된 그 시종은, 제법 단호한 태도로 제 주인을 막아서며 철통같이 방문을 지켰다.

 

“엥, 어째서?!”

“신부 대기실엔 원래 신랑이 들어오면 안 되는 거라고요! 가서 마저 준비 하세요!”

“나는 준비 다 끝났는데….”

 

그런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평소라면 좋게 넘어가 줬을 시종도 오늘은 특별한 날인만큼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는지, 단호하게 돌아가라며 손짓 할 뿐이었다.

‘아아. 이렇게 엄격하게 굴 줄이야.’ 혼례라는 이벤트에 앞서 철저해진 하인들 때문에 입이 삐죽 튀어나온 카림은 터덜터덜 힘없는 발걸음으로 자신의 방에 돌아왔다.

 

“카림, 어디 다녀오는 거야?”

“쟈밀….”

 

방으로 돌아오자 자신을 맞이하는 것은 자신의 준비를 돕고 있는 쟈밀이었다. 아까 전 만큼 분주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일이 남아있는 것 같은 그를 보자니 어쩐지 머쓱해진 카림은, 얌전히 자리에 앉아 하인들이 입혀준 낯선 의복의 매무새를 서투르게 정리했다.

 

“이사르를 보러 갔는데, 못 만나고 왔지 뭐야….”

“당연히 못 만나게 하겠지. 신랑이 경거망동하게 뭐 하는 거야…?”

“쟈밀까지 너무 하네 정말~, 보고 싶은 걸 어떡해!”

 

가볍게 투정을 부린 카림은 기지개를 펴고는 근처에 놓인 쿠션을 끌어안았다. ‘하여간, 언제 철이 들려고 저런지.’ 혼례복을 입고 있어도 여전히 그가 아이처럼 느껴지는 쟈밀은 들으라는 듯 중얼거리고, 어질러진 방을 정리해 나갔다.

 

“그나저나 새삼스럽지만…. 결국 결혼하는 구나, 너희.”

“헤헤. 허락을 받아내는 게 좀 힘들었지만!”

“뭐, 사실 이사르 정도면 부족할 것 없는 신부지. 똑똑하고 야무지고…, 마법사로서도 사업가로서도 훌륭하니까.”

 

마치 그의 형제나 되는 것처럼 중얼거린 쟈밀은, 저절로 먼 과거의 일을 떠올리고 만다.

카림과 이사르의 비밀연애를 가장 먼저 눈치 챈 것은 쟈밀이었다. 아니 사실 그건 눈치 챘다고 하기 보다는, 카림이 순순히 고백해 왔다고 해야 옳은 것이겠지. ‘나, 그 애가 좋더라.’ 너무나도 순수하게 제 가문이 미워하는 집안의 딸을 좋아한다고 고백하던 카림은 샛별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눈을 하고 있어, 어린 쟈밀은 그걸 말리지도 못하고 누군가에게 폭로하지도 못한 채 몇 십 년을 침묵해야 했었지.

‘솔직히, 말해봐야 내가 피곤해질 뿐이니까.’ ‘밀회를 감시하라는 명령까지 내려오면 일만 늘어나고.’ 이런 저런 사정과 남의 연애사에 휘말리기 싫다는 감정, 그리고 ‘과연 어디까지 가나 보자’는 약간의 심술로 시작된 침묵의 결과가, 이렇게 결실을 맺을 줄 대체 누가 알았겠는가.

쟈밀은 뜻밖의 해피엔딩이 우습게 느껴져 피식 웃었고, 그 미소를 본 카림은 무언가 다른 걸 떠올린 건지 넌지시 오랜 친구에게 제안해 왔다.

 

“저기, 쟈밀도 아이렌이랑 결혼하는 게 어때?”

“…아? 갑자기 내 이야기는 왜 나오는 건데?”

 

방금까지 추억에 잠겨있던 얼굴이 갑자기 새하얗게 질리며 인상을 쓴다. 지금 쯤 신부 대기실에서 이사르의 단장을 도와주고 있을, 자신의 학창시절을 화려하게 망쳐주었던 전대미문 감독생의 이름에 지나칠 정도로 예리하게 반응한 쟈밀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내 결혼은 내가 알아서 할테니 신경 꺼. 그리고 그 녀석에게 바이퍼 가의 짐을 짊어지게 하기 싫어.”

“으음….”

 

‘하지만 아이렌이라면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을 텐데.’ 아이렌에 대해서는 나름 어느 정도 안다고 자부할 수 있는 카림은 들리지 않게 그리 덧붙이고 배시시 웃었다.

자신의 이 행복함을 쟈밀도 똑같이 경험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 상대가 자신도 잘 아는 상대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쟈밀과 아이렌 사이의 아이가 태어난다면, 자신과 이사르 사이의 아이와 친구를 하면 딱이지 않겠는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또 이사르에 대해 떠올리고 있던 카림은, 반사적으로 다시 툴툴거리기 시작했다.

 

“아아~ 얼른 이사르 보고 싶어!”

“식에서 볼 거 아냐? 작작 해라, 진짜.”

“그래도~! 한 시간이라도 더 빨리 보고 싶은걸!”

 

결혼식 날의 신랑이란 원래 한껏 들떠서 제정신이 아니라지만, 앵무새 마냥 같은 소리만 하는 걸 듣고 있으려니 머리가 아찔해진다. 쟈밀은 지긋지긋하다는 듯 혀를 차다가 짐 꾸러미를 들고 밖으로 나섰다.

 

“얌전히 있어. 금방 다녀올 테니까.”

 

‘어디 가?’ 그렇게 물을 틈도 없이 상대는 빠르게 자리를 떠버린다. 카림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서는 쟈밀을 보다가, 슬쩍 뒷목을 긁었다.

수많은 연회와 함께 자라오긴 했지만, 역시 혼례는 다른 연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바쁜 것이구나. 카림은 새삼스럽게 오늘의 결혼식이 얼마나 중요하고 큰 행사인지 실감하고 코 밑을 문질렀다.

이렇게 큰 축복 속에서, 자신과 이사르가 마침내 부부가 된다. 이 얼마나 큰 기쁨이고, 지고한 행복인가.

 

“카림.”

“우왓!”

 

혼자서 뿌듯함에 웃고 있던 그는, 갑자기 창밖에서 들리는 정겨운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아아.’ 짧은 탄식을 내뱉은 그의 얼굴이, 한 여름의 태양처럼 붉게 타오른다.

창 밖에서 양탄자를 타고 온 제 신부를 본 카림은,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큰 목소리로 대꾸했다.

 

“이사르! 어떻게 온 거야?”

“하하. 속임수를 좀 썼지. 아이렌 씨가 기회를 만들어 줬거든.”

 

‘쉿’ 조용히 하라는 듯 검지를 입술 위에 얹은 이사르는 치렁치렁한 혼례복의 장식들을 정리하고는, 상체를 들어 얼굴과 얼굴 사이의 거리를 확 좁혀왔다.

 

“어때, 나 예뻐?”

 

장난스럽게 웃으며 묻는 얼굴은 눈부시게 빛이 나고 있었다. 투명한 금빛 눈동자도, 피보다 붉고 노을보다 선명한 붉은 머리카락도, 그리고 그 붉음 사이로 간간히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는 새파란 색감마저도…. 모든 것이 신부화장의 화려함과 합쳐져, 전설 속의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이것이, 자신의 신부. 제 첫사랑. 이사르 패럿베인.

─그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수식어들에 어린아이 마냥 가슴이 벅차오른 그는, 진심을 담아 답했다.

 

“…세상에서 제일 예뻐!”

“헤헤, 카림도 세상에서 제일 멋있어!”

“정말? 아하하….”

 

아까 전 하인들에게 질리도록 들은 ‘멋있다’가, 지금은 어째서 이렇게 달콤하게 들리는 걸까.

자신을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보는 이사르의 시선에 귀까지 달아오른 카림은 손등으로 얼굴의 열기를 훔치다가, 점점 다가오는 발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이크, 나중에 식장에서 보자!”

 

이사르도 다가오는 인기척을 느낀 걸까. 방문 너머를 살핀 그는 가볍게 카림의 볼에 입 맞추고 제 방을 향해 날아갔다.

그야말로 바람같은 퇴장. 잔상만을 남기고 사라지는 그림자.

그 재빠른 비행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카림은 입술이 닿았던 부분을 가볍게 문지르며 뒤로 드러누웠다.

 

“…아….”

 

큰일 났다. 벌써부터 너무 좋아서, 식장에 가면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다.

쟈밀이 돌아온 것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흥분한 카림은 얼굴을 가린 채, 한참동안이나 실없이 웃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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